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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신화편집

바빌론의 경우 까마귀가 돌아오지 않자 홍수가 멎고 땅이 나타난 걸 알았으며 성경은『맨 처음 까마귀를 날려 보내어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왕래하더라』하여 물이 마른 것을 처음 알려준 새로 기록되었다.

다리우스 왕(Darius 1세)의 비석에 머리 위 공중에 아후라 마즈다가 있는데 사람의 몸에 두 날개를 가진 모습이다. 그 새가 무엇인지 설명은 없으나 조로아스터교(Zoroaster)에서 아후라마즈다(Ahura Mazda)를 <빛의 하느님>이라 말하는 걸로 보아 일광(日光)의 상징이며 하늘의 사자인 까마귀로 추정이 가능하다. 조로아스터교에서 기원전 4세기 무렵 갈라진 미트라교(Mithra)의 신화에서 미트라신이 태양신이며 길 안내자가 까마귀로 설명되어지는 것으로서 증명되고 있다. 땅 속으로 달아난 소는 모든 동식물이 거기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아 지신(地神)으로 이런 신앙은 만주여진의 설화(지신地神에게 바치는 청우靑牛-검은 암소)에서도 시원 형태가 발견된다.

깊은 산 맑은 시냇가의 무화과나무 밑 큰 바위가 갈라지면서 나온 아기가 <미트라>이다. 자라면서 [해님]과 힘을 합쳐 모든 일을 하기로 하였다. 미트라가 나중에 몸에서 모든 동식물이 생겨난 소를 잡으려 할 때 땅속으로 달아나자 해님이 심부름꾼인 까마귀를 시켜 행방을 찾게 하였다. 미트라신이 까마귀의 인도로 마침내 소를 잡았다.

북미 신화편집

인디언 이동의 시발 지점인 캄차카 반도 코리약족(Koryak)과 그 북쪽 축치족(Chukchee) 등의 신화에 창세 신화를 보면 땅을 만든 조물주인 큰 까마귀인 쿳키나쿠(Qutkinnaqu) 일가(一家)만 살았는데 딸인 이네아네우트(Yineaneut)가 해님인 테이켐틸란(Teikemtilan)의 아내가 되었으며 조카인 킬루(Kilu)는 큰 까마귀 아들인 에멤쿠트(Ememqut)와 결혼하였다. 또한 그의 세 딸은 모두 바다의 신 아들들과 결혼한다. 이렇듯 까마귀는 천신(天神)이며 일신(日神)이고 무당은 까마귀로 분장하여 신통력을 갖는다. 이들의 이동로인 알래스카 북부의 에스키모도『하늘에서 까마귀 모습의 사람이 내려와서 물 밑의 흙을 떠다가 땅을 만들었다. 세상은 안개처럼 희미했는데 까마귀가 빛과 어둠을 나누어 낮과 밤을 만들었다. 캄챠카 반도의 고유개념인 보른(까마귀신)은 여러가지 뜻으로 나뉜다. 숲에 사는 까마귀, 천상에 있는 최고신, 의식을 집행하는 샤먼, 등등이다.

처음에 세상은 바다뿐이었다. 그 위로 까마귀가 날아다니며 앉을 자리를 찾다가 조그만 바위섬(바위 부레)에 내려앉아 『땅이 되어라』말하니 자꾸만 커져서 땅이 되었다. 그 무렵 하늘나라 할아비가 해와 달과 별을 모두 큰 궤짝에 넣어두어 세상이 캄캄하였다. 그래서 까마귀는 하늘로 날아 올라가서 해와 달을 훔쳐다가 낮과 밤을 비추게 하였다. 세상의 모든 물을 페트렐이라는 신(神)이 혼자 가지고 내놓지 않아 까마귀가 훔쳐다가 온 세상에 흐르게 했다. 그리하여 크고 작은 강과 호수들이 생겼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것들이 해와 달의 빛을 보며 물을 마시고 살게 된 까닭은 모두 까마귀신(神)의 덕분이었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최초 설화인 세드나 신화에서 등장하는 <검은 풀마새>와 같은 책에서 이어 나오는 설화인 [개와 결혼한 여자]에서 나오는 까마귀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걸 보아도 알게 된다. 에스키모 서사시(敍事詩)엔 태초의 무당 할머니가 까마귀였으며 툴룬 이그라크라고 하는 사람을 만들어 내었는데 그가 무당과 싸워 이긴 다음 고래를 작살로 잡고 많은 햇빛을 훔쳐 빛과 어둠의 비율을 조절하는 가운데 불을 찾는 길을 배운다고 한다.

옛날 외딴 해변마을에 아이능과 딸 세드나가 살았는데 얼음이 녹자 풀마새가 날아와 유혹하자 그를 따라 바다를 건넜다. 그러나 부친이 풀마새가 감언이설로 속인 걸 알고 그녀를 데리고 가려 하는 과정에서 뒤쫓아 온 풀마새들과 싸움이 벌어졌다. 두 사람이 죽음에 이르는 순간 아비는 그녀를 새들에게 내어줄 것을 결심하고 물속에 던졌다. 땅이 갈라져 그녀를 삼킨 다음 이후로 새드나는 여왕으로 애들분 땅에서 살고 있다.

옛날 어느 마을에 한 처녀가 기르는 개를 매우 좋아해서 밤이면 사람으로 변해 같이 자고 날이 밝으면 다시 개로 변하곤 했다. 임신을 하자 부모는 살던 집을 허물고 동네 사람들을 데리고 떠나 버렸다. 혼자 남은 그녀는 까마귀의 도움으로 불을 얻고 강아지 5마리를 키워 사람으로 변하게 하여 연장을 만들어 주어 사냥하게 했다. 까마귀를 통해 소식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이 모두 돌아오니 아들은 추장이 되어 온 고장 사람들을 잘 먹여 살렸다.

알래스카와 캐나다 접경지대인 침샨족(Tsimshan)과 하이다족(Haida)의 천지기원에 관한 설화이다. 클라티스족(clatis)이 4족(族)으로 하이다족이 2족(族)으로 갈래를 이루어 서로 혼인을 하지 않는 풍속도 동방계의 풍습과 동일한 연원을 갖는다. 아울러 마을에 많이 세워진 장승대 꼭대기에 천둥새(Thunderbird)라는 새가 있는 것도 우리의 갈새, 가라새, カラス, 까마귀와 동일하다. 또한 Kirby Sattler가 그린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초상화에도 까마귀 장식이 유독 눈에 띈다.

일본 신화편집

신무(神武)의 동정(東征) 때 천조대신(天照大神)이 꿈에 나타나『내가 지금 야다노가라스(두팔지오,(頭八咫烏)를 보내어 길을 안내하게 하리라』하여 잠에서 깨니 과연 까마귀(가라스)가 와서 공중에서 날아왔다. 이를 보고『이 새가 온 것은 서몽(瑞夢) 그대로다. 크고도 융성한 천조대신의 덕이다.

신神은 이와 같이하여 대업을 도우시려 함이다』 이에 오호토모씨(대반씨,大伴氏)의 선조인 히노오미(일신명,日神命)가 오오구메(대래목,大來目)을 인솔하고 대군(大軍)의 선두에 섰다. 산로(山路)를 개척하면서 까마귀가 향하는 곳을 따라 이를 쳐다보며 행군하여 드디어 우쓰씨쿠니(첨군添郡)의 소호고호리(층부현層富縣-혹은 우다시모쓰고호리菟田下縣)에 도착하여 토전(菟田)의 천읍(穿邑)이라 이름하였다.

마침내 가시하라(강원,橿原)에 서울을 세우고 이하레(반여언,磐余彦)는 왕위에 올랐다. 안내를 한 까마귀까지 상을 내려 가쓰라누(갈야葛野-까마귀마을)을 다스리게 했다.

다시 야다노가라스(두팔지오頭八咫烏)를 파견하자 에시기(형기성,兄磯城)의 군영에 이르러 우짖으며『천신(天神)의 아들이 너를 부르고 있다』 다시 아우인 제기성(弟磯城)의 집에 날아와 우짖으며, 제기성은 새를 따라 천황의 본영에 항복하였다.

신무군을 안내한 야다가라스(두팔지오頭八咫烏)가 특별히 눈에 띄는데 바로 동방계 신조[神鳥]인 세발까마귀로 보인다. 따라서 이를 앞장세워서 진군(進軍)한 히노오미(일신명,日神命)에 일[日]이 들어간 걸로 보아 분명히 고구려나 백제의 오이(烏伊), 오간(烏干)처럼 일자[日者]를 겸한 장군이다. <갈야> 또한 갈새가라새의 마을이니 이런 짐작이 힘을 얻는다. 고사기(古事記)에는 야타카라스(팔지오,八咫烏)라고 기록했다.

삼국 신화편집

고구려에서 추모(鄒牟)와 함께 동행 한 3신 가운데 오이(烏伊)가 있으며 이런 보좌신(保佐臣)들의 역할이 유리(琉璃) 때의 오간(烏干)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고구려 유리왕(琉璃王)이 부여왕 대소(帶素)와 각축(角逐)하는 과정에서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전조(前兆)를 예측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까마귀가 등장한다. 나라의 운명을 점치는데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 걸 알게 해주는 의미 있는 기록이다.

겨울 10월에 부여왕 대소가 사신을 시켜 붉은 까마귀를 보내왔는데 머리가 하나에 몸뚱이가 둘이었다. 처음에 부여 사람이 이 까마귀를 얻어 왕에게 바쳤는데 어떤 이가 말하기를 “까마귀는 검은데 지금 붉은 빛이 되고 또 하나의 머리에 두 몸이 달렸으니 두 나라를 아우를 징조로서 왕께서 아마 고구려를 차지하려는 가 봅니다”라고 하였다. 대소가 이 말을 듣고 기뻐 까마귀를 보내오면서 어떤 이의 풀이까지 함께 전하였다. 왕과 여러 신하들이 논의해 회답하기를 “검은 것은 북방의 색인데 이제 변해 남방의 색이 되었으며 또 붉은 까마귀는 상서로운 것인데 그대가 이를 얻고도 가지지 못하고 나에게 보냈으니 우리 두 나라의 흥망을 알 수 없겠구나!”라고 하였다. 대소가 이 말을 듣고 놀라워하고 후회하였다.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 설화(삼국유사 권1)에서도 오[烏]란 글귀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신라 관등(官等) 가운데 대오(大烏,제 15등)와 소오(小烏,제 16등)와 대칭된다. 신라 시조 설화에서도 보이듯이 천손하강설화[天孫下降說話]의 모티브가 배어있는데 하늘의 사자(使者)로서 세발까마귀를 현시화(顯示化)한 일자(日者)의 역할이었음이 분명하다. 고구려의 세 보좌신(保佐臣) 가운데 연속하여 등장하는 오이(烏伊)-오간(烏干)과 등치(等値)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연오랑세오녀가 해님을 맞아들이는 제사를 지낸 영일(迎日)은 원래 근오지(斤烏支-근은 우리말 큰으로 큰 까마귀이다)로서 왜(倭)로 갈 때의 교통로 상에 위치한 섬인 오키[烏岐오기-작은 까마귀]와 한 세트를 이룬다는 사실은 동방계의 까마귀라는 길 안내자[삼족오三足烏 사상]이 그대로 전파되는 명확한 흐름을 아주 잘 반영하고 있다.

우리의 풍습 중 신목(神木)이나 천주목(天柱木)을 형상화한 솟대 위에 올리는 새가 까마귀였음은 근래에 이르기까지 마을에서 잔존하던 유습(遺習)인 새해 설이 되면서 세웠던 오지봉[烏止棒]을 주목하면 된다. 이 위에 <갈새>가 앉으면 그 해는 풍년이 든다는 이야기는 긴 겨울을 지나면서 새해의 밝은 햇빛을 맞이하려는 뜻과 통한다. <갈새>가 가라새(현조,玄鳥)이며 일본의 가라스(오烏-까마귀)와 상통하는 [태양의 심부름꾼]을 상징하는 삼족오[三足烏]의 시원형태임을 증명해주는 부분이다. 신라에서 정월 대보름을 오기일[烏忌日]로 삼아 태양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풍습을 설명한 아래의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신라 비처왕(毗處王-소지왕炤智王)이 천천사(天泉寺)로 갔을 때 [까마귀]와 쥐가 나타났다. 먼저 쥐가 말한 대로 까마귀를 따라 피촌(避村)의 연못에서 나온 노인이 준 편지에『펴면 두 사람이 죽고 그렇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라 적혀 있자 차라리 한 사람으로 족하다는 생각에 망설였다. 그러자 일관日官이『두 사람은 신하요 한 사람은 대왕을 말 합니다』는 조언(助言)을 옳다하여 펴보니『사금갑(射琴匣) 거문고집을 활로 쏘아라』는 글귀가 있었다. 궁(宮)에 돌아가 그대로 하였더니 그 속에서 간음(姦淫)하고 있던 궁녀와 중이 죽었다. 이 때문에 정월 첫 번째와 마지막 [쥐날]은 모든 일에 조심하여 함부로 움직이지 않으며 그 달 대보름엔 까마귀를 기피하는 날 오기일[烏忌日]이라 하여 찹쌀밥을 지어 까마귀에게 바친다.

칠월 칠석(七夕)이면 견우(牽牛)와 직녀(織女)를 만나게 해주는 민속설화에서 은하수를 건너는 다리가 오작교(烏鵲橋)로서 말 그대로 까마귀(烏)와 까치(鵲)가 만든 다리이다. 까마귀는 현조(玄鳥)로서 진화하여 후일 이를 족조(族鳥)로서 승화시킨 현이(玄夷-태양을 상징하는 삼족오를 숭상하는 족단族團)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이는 후일 주主 세력이었던 고구려의 오지(烏知)와 신라의 대오(大烏)와 소오(小烏),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는 물론 백제의 대오(大烏)라는 관직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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