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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쿠스 마르티우스(Ancus ,출생:기원전 675년경~기원전 616년경 드물게 자연사)는 기원전 7세기에 활동한 전설적인 로마 7왕 중 제4대 왕(BC 642~617 재위)이였다. 그는 누마 폼필리우스의 손자다. 어머니는 폼필리아이며 아버지는 마르키우스(Marcius)로 알려져 있다. 제 4대 로마 왕(기원전 641년경~기원전 616년경)인 그는 오스티아 항을 건설하였다.

리비우스(BC 64/59~AD 17)와 같은 로마의 역사가들은 그의 통치에 대해 자세히 기록했으나 이는 상당 부분 전설에 입각한 것이다.

툴루스 호스틸리우스가 죽은 뒤에 선출된 제4대 왕은 사비니족 출신의 안쿠스 마르티우스라는 자였다. 37세 때 왕위에 올라, 이웃에 사는 라틴인과 동맹을 맺었다. 첫째는 테베레 강에 처음으로 다리를 놓은 것이다. 테베레 강 서안에 있는 자니콜로 언덕 을 요새화했기 때문에, 그것과 테베레 강 동안에 모여 있는 일곱 언덕을 이을 필요가 생겼다.

제 3대왕 툴루스 호스틸리우스와 제 4대왕 안쿠스 마르티우스는 라틴족의 발상지이자 선조의 땅이기도한 알바 롱가 공격을 시작으로 주변국 들과의 잦은 전쟁을 통해 병합해가던 로마인들이 밖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제4대 왕 앙쿠스 마르키우스 때의 일이었다. 로마의 일곱 언덕은 주민으로 가득 메워지기 시작했다. 안쿠스 왕은 25년에 걸친 치세 동안 전투 외에도 몇 가지 사업을 완수 했다.

5대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BC 616?∼BC 579?)는 아내의 권유로 로마로 옮겨가 안쿠스 마르키우스의 아들의 후견인이 되었다가 안쿠스가 죽은 뒤 제위에 올랐다.

라틴족과의 전투Edit

호전적인 호스틸리우스 치하에서 살다보니 자연스레 로마인들은 잠시라도 전쟁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 그 소망은 새 왕으로 추대된 앙쿠스 마르키우스가 집권하면서 실현되었다. 그러나 이런 로마를 인근 부족이 가만히 둘리 없었다. 곧 호스틸리우스에게 연패해 앙금을 사고있던 부족들은 로마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첫번째는 구 라틴족으로, 라틴어로 프리스키라티니라 불린 이들인데, 아이네아스가 이탈리아에 도착하기 전부터 라티움 평원의 주인인 이들이었다. 그들은 로마와 같은 언어를 사용했고 문화의 상당 부분도 공유했다.

그러나 갓 태어난 로마가 다양한 부족민들을 받아들이며 큰 세력으로 부상하자 그를 제어할 필요를 느꼈다. 마르키우스가 이들 부족에게 보낸 사절단이 빈손으로 돌아오자 그는 이것이 자신에 대한 일종의 시험임을 간파하고 즉시 군대를 소집했다.

만약 그때 그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면 인근 부족들은 하나로 뭉쳐 로마를 쳤을거다. 뒤늦게서야 그들은 마르키우스가 옛아보다 막강한 전사임을 개닫고 후회했다. 그는 공격을 주도한 도시국가를 함락했고, 로마의 정책에 따라 도시를 초토화하고 시민들을 로마로 흡수했다.

도시 개발Edit

로마의 일곱 언덕 중 하나인 아벤티누스 언덕에도 정착촌이 생겼다. 야니쿨룸 언덕 주변에도 고랑을 파고 방어막을 구축했으며 성벽으로 에워쌌다. 야니쿨룸 언덕이 로마의 북쪽에 있으며 그쪽으로 가장 가까운 부족이 에트루리아인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 공사는 에트루리아의 공격을 방어하는 차원에서 이루어 진듯 하다.

이로써 그는 로마에 또 하나의 요충지를 보강함과 도시에 적의 침입에도 대비했다. 전서에 따르면 마르키우스는 수도관을 설치해 물을 로마로 끌어들인 최초의 왕이다.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교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아쿠아 마르키아마르쿠이스의 치적을 알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따서 명한 듯 하다.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인 마르키우스 가문은 자신들이 마르키우스 왕의 후손이라 하며, 선조의 업적을 계승하는 의미에서 훗날 다른 수도관 건설 공사에도 직접 개입했다. 마르키우스는 로마의 영토와 인구 증가에 힘입어 도시를 확장할 수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도시 로마에서 약 26km떨어진 오스티아란 연안에 로마 역사상 처음으로 항구를 세웠다고 한다. 도시 오스티아 안티카는 수세기에 걸쳐 옛 형상을 거의 유지해 왔으며, 신전과 극장을 포함해 도시의 상당 부분은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있다.

고고학자들이 이 도시의 정확한 건설 연도를 밝혀내지 못했기에 앙쿠스 마르키우스가 실제 설립자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선한왕Edit

할아버지인 누마 폼필리우스를 닮아 선했던 그는, 로마의 종교를 더 발전시켰다. 그는 전쟁을 선포하기까지의 절차를 더 정교하게 가다듬었다고도 한다. 역사가마다 그를 다르게 평가하긴 하지만, 그는 약 25~26년간 로마를 통치했으며, 후대의 역사가들은 그를 선한 왕이었다고 평가했다.

앙쿠스 마르키우스는 차분하고 운화한 성품을 지녔으며, 평화와 전쟁의 기술에 똑같이 능통했다고 한다. 그가 전설상의 인물인진 확실치 않지만, 그의 집권기간에 일어난 사건, 즉 로마가 주변 라틴족들 중에서 가장 강해진 존재로 성장했고 에트루리아인의 세력이 날로 강성해지고 있단건 사실로 보인다.

하여튼 통치 말기 그는 당시로써는 드물게 자연사 했다.

전 임
툴루스 호스틸리우스
제4대 로마의 왕
후 임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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